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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庶出)의 비애(悲哀)

장구봉 2019. 1. 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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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庶出)의 비애(悲哀)

                                       



(사진제공/거목)


서출(庶出)의 비애(悲哀)



양사언(楊士彦)의 아버지 '양 민'이 전라도 영광의 사또첨지를

받고 부임 차 내려가던 꽃 피는 삼월이었다.

 시골을 지날 때 시장기가 들었다.

조반을 거르고 황급히 길을 떠난 탓이다.

그러나 농번기라 사람들이 없었다.

이 집 저 집 둘러보던 중에 어느 집에서

소녀가 나와 공손하게 맞이했다.


 그리고는 신관 사또가 거리에서 진지를 드실 수

없다며 안으로 모셨다.

소녀의 행동거지나 말솜씨가 어찌나 예의 바른지

 사또는 기특하게 여겼다. 한 끼를 잘 얻어먹은 젊은 신관

사또는 고마움에 보답하려고 소매에서 청선(靑扇)과 홍선(紅扇)

부채 두 자루를 꺼내 그에게 주었다.

농담 삼아 "나의 고마운 마음을 채단으로 표시한다.

대신하여 부채로 너에게 주는 것이다.“ 채단이라 함은 결혼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청색 홍색의 옷감들이다.

깜짝 놀란 소녀는 안방으로 뛰어가 장롱을

 뒤져 급히 홍보를 가져왔다.


그리고 사또에게서 받은 청선(靑扇)과 홍선(紅扇)을

홍보위에 올려놓았다. 어리둥절한 사또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소녀는 폐백으로 보내는 채단을 어찌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며 부채 두개를 신주단지처럼 잘 싸서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세월이 흘렀다. 사또가 이런 저런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한 노인이 사또를 찾아왔다.


"몇 년 전에 사또가 부임할 때 어느 시골집에 들려 아침 식사를

 한 후에 그 집 소녀에게 청선(靑扇)과 홍선(紅扇) 부채 두

 자루를 주고 간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사또는 글쎄? 하다가, “그런 일이 있었지.

그리고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여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라고 했다. 노인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그 여식이 과년한 제 딸년입니다.

사또가 다녀간 후로 시집을 보내려 해도 어느 곳으로도 시집을

안 가겠다고 막무가내여서 영문을 몰라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어험" 농은 아니렸다! 그러면서 사또가 말했다.

그 정성이 지극하거늘 내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단 말이요?

 노인! 여식이 과년하다니 길일을 잡아 내 아내로 맞이하리다!

식사 한 끼 얻어먹은 대가로 부채 두 자루를 선물했으면 밥값으로

 충분할 텐데, 졸지에 아내로 맞이하게 되니 운명의 장난이었다.

이 소녀가 바로 양사언의 어머니이시다. 사또에게는 정실부인이

 있었고 부인에게는 '양사준'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후처인

 그 소녀와의 사이에서 사언과 사기 두 아들을 낳았다.


적자(嫡子)인 사준과 서자(庶子)인 사언 사기 삼형제는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 났다. 풍채가 좋아 주변으로부터

 칭송이 끊이질 않았다.

정실부인이 죽고 모든 살림살이는 후처가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처의 아들이다. 아무리 훌륭해도 서자다.

이것이 소실의 서러움이다. 소실부인의 소원은 오로지

  자기 아들들에게 서자의 딱지를 떼 주는 것이었다.

남편 '양 민'이 죽었다.

장사지내는 날에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 여인이 눈물

 흘리며 말했다. 나는 양씨 가문에 들어와 두 아들을 낳았다.

  아들들이 재주가 있고 총명하며 풍채도 좋거늘, 첩이 낳았다

 하여 나라 풍습이 그들에게 서자의 굴레를 벗겨주지 않는구나.

서모가 죽으면 적자인 큰 아드님은 상복을 석 달밖에 복을 입지

  않는 게 국법이다. 이리되면, 그때 가서 내가 낳은 두

아들은 서자 소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네 어머니는 네가 젓 먹을 때 돌아기고 안계시다.

그런 너를 내손으로 길렀다. 그러니 내가 지금 영감님 성복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복제가 혼돈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적서관계를 모르고 너희들은

마침내 적자만의 삼형제가 된다.

그래서 장자인 사준에게 부탁한다. 내 이미 마음을 다진 터,

무엇을 주저 하랴? 내가 죽은 뒤에 사언, 사기 두 형제한테 서자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죽어서라도 기꺼이 너희들 아버지

 곁에 누울 수 있다. 이제부터 너는 내가 낳은 아들이다.

 사준아! 내 말을 따르리라고 믿는다.

바로 양사언의 어머니는 가슴에 품고 다니던 비상을 먹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전의 그 소녀는 자기 아들을 서자의

 멍에에서 풀어주고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양사언은 후에 장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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